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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보수정치인의 독무대로 전락했지만 지역의 정치적 위상이나 행정서비스는 추락을 거듭해, 동북아 물류거점의 잇점을 살리지 못하고 첨단지식산업 육성도 지지부진6∙25전쟁 당시 임시 수도 역할을 담당했으며 한 때 국내 2위 지방자치단체로 군림하다가 변방으로 밀려난 항구도시 부산은 한국 현대사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았다.박정희 군사독재정부에 맨몸을 저항했던 1979년 10월 부마항쟁, 전두환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1987년 6∙10 민주화 운동 등 한국의 민주주의 투쟁 역사에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민진규(출처 : iNIS)부산은 온 국민이 사랑한 대중가요의 단골소재였다. 피난 시절을 노래한 손인호의 ‘이별의 부산항’과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비롯해 이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까지 항구도시 부산은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남자들의 우정과 배신을 그린 영화의 무대이기도 했던 부산은 의리로 똘똘 뭉친‘진짜 사나이’들의 고향이다.필자도 부산을 많이 방문해보지는 않았지만 기장 대변항에서 먹은 멸치회, 해운대의 겨울 백사장, 가덕도의 가을 숭어낚시 등 좋은 추억을 선사한 대상이다.지난 60년 이상 보수정치인의 아성이었던 부산시의 자치행정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오곡벨리모델인 ‘5G Valley Model’을 적용해 평가해 세부 지표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가덕도 신공항과 같은 개발논리로 정치적 후진성 입증정치한때 국내 2위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군림했던 부산시장은 부산경제의 쇠퇴와 더불어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정작 누가 시장인지 관심을 갖는 국민도 없는 지경에까지 내몰렸다.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이후 민선 시장을 역임한 여야 정치인을 열거해 보면 문정수, 안상영, 허남식, 서병수, 오거돈 등이다. 이들 중 현재 시장인 오거돈을 제외하면 모두 보수 정당 출신으로 보수의 깃발만 들면 당선되는 곳이 부산이었다.부산은 소위 말하는 PK(부산∙경남)라고 5∙16군사 쿠데타 이후 권력을 장악한 TK(대구∙경북)와 더불어 한국 정치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정치계파의 중심 도시이다.TK로 대변되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이 주도한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문민정부 시대를 연 김영삼, 친숙한 서민대통령의 이미지로 기득권과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했던 노무현이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보수정당 시장들의 시정구호를 살펴 보면 문정수는 ‘21세기 새 부산건설’, 안상영은 ‘시민과 하는 부산 재창조’와 ‘희망과 도약, 세계도시 부산’, 허남식은 ‘성숙한 세계 도시 부산’, ‘세계로 열린 선진부산’, ‘크고 강한 부산’, 서병수는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 오거돈은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등이다.안상영은 재선, 허남식은 3선을 한 보수정당 출신 정치인으로 당선된 횟수에 동일한 시정목표를 제시했다. 보수정당이 24년 동안 시정을 장악했지만 부산시의 정치적 위상이나 행정 서비스는 오히려 추락을 거듭했다. 지역발전은 보수가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우리가 남이가’라는 특유의 지역주의로 뭉친 지역에서 정치공약을 개발하거나 시민을 위해 행정서비스를 개선할 필요는 없었다.항만도시의 발전과는 관계 없는 해운대 신도시 건설을 위한 인허가 비리,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같은 지역 이기주의적 공약의 반복, 전문가와 대립하는 문화행정 등은 부산의 정치가 3류로 전락했음을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에 해당된다.특히 보수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조차도 거부했던 가덕도 신공항 문제를 진보출신 시장이 다시 재론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지역 정치인들의 수준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해외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검토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무안공항, 양양공항, 예천공항 등 수천 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유령 공항으로 전락한 수 많은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지방 방백으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공항을 지을 돈으로 기업을 유치할 공단을 개발하겠다는 획기적인 구상을 내도 침체된 부산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인 상태에서 70년대 개발논리를 제시하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지역의 땅값을 올리겠다는 단순 논리로 부동산 투기세력의 이익만 대변하려면 시장을 맡기보다는 지주와 부동산 중개사 단체의 대표를 하는 것이 맞다. 부산 시민들은 시장들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낙후된 부산을 ‘세계 도시, 크고 강한 부산, 기술로 융성하는 부산,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 등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갖춘 역량 있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시장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방의회 의원들이나 시민단체까지 망국적인 개발논리에 휩쓸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수십 년 동안 비슷한 나팔소리로 변죽만 울린 정치인을 대표자로 뽑은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좋은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하다. 진보출신 시장이 어떤 변화를 주도할지 모르지만 지난 1년을 반추해보면 보수출신 시장들과 차별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교통과 물류 허브라는 꿈도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 높아경제부산시는 조선시대부터 일본과의 국제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했다. 해방 이후 미군의 원조물자를 하역했으며 6∙25 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로 한국 정치 및 경제의 중심지였다.3년 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나고 설탕, 밀가루, 합판, 신발, 가발, 섬유 등 경공업 위주로 국내경제가 성장하면서 정치수도인 서울과 더불어 경제수도로 확고한 위치를 점유했다.1970~80년대 석유화학, 철강, 기계, 조선, 플랜트 등으로 국내 산업이 중화학공업으로 전환되면서 울산, 창원, 거제, 여수, 구미 등에 주도권을 내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동북아 물류거점의 지위는 유지했다.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2000년대 이후 중국경제의 급부상, 반도체와 같은 첨단 수출상품의 항공운송 증가 등으로 부산항의 입지는 급격하게 위축됐다.부산시의 재정자립도는 2018년 기준 53.2%로 다른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평균 65.7%에 에 비해 낮은 편이다. 또한 2016년에는 재정자립도가 55.4%를 기록했지만 2년만에 2% 이상 축소된 것은 우려된다. 2018년 기준 세입은 총 7조9830억원으로 자체 세입 4조2462억원, 이전재원 3조3254억원, 지방채 4119억원 등으로 구성됐다. 예산규모는 2015년 10조204억이었던 것이 2016년 11조1476억원, 2017년 11조2926억원, 2018년 11조9991억원, 2019년 12조9012억원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중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예산이 3조7362억원으로 전체의 42.3%를 차지하고 있다.다음으로 일반공공행정이 1조1581억원으로 13.1%, 수송 및 교통이 9127억원으로 10.3%, 교육이 7179억원으로 8.1% 등 이들 분야가 전체 세출의 73.3%로 대부분을 점유했다.2018년 7월 오거돈 시장은 취임사에서 부산을 항만, 공항, 철도가 모인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 중국 상하이, 홍콩, 일본 후쿠오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등을 잇는 교통과 물류의 세계적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을 잇는 것이 어떤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또한 오거돈은 ‘세계 각국의 화물이 몰려들고 세계인이 다투어 찾아오는 활기찬 국제도시를 만들어 싱가포르와 홍콩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보수정부가 추진했던 부산을 동북아 국제금융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도 허구임이 드러났고, 오거돈의 첨단지식산업을 육성하겠다는 포부도 단순 구호에 불과할 것이라는 평가가 대세다.대기업이 스스로 투자하러 오도록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삼성르노자동차는 정작 노사간의 극한대결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데 지역정치인들이 중재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부산에서 필리핀 수빅만으로 조선공장을 옮겼던 한진중공업은 현지 조선소의 파산으로 앞날이 순탄치 않은 실정이다. 부산은 울산, 거제 등에 조선과 해양산업의 허브 항구라는 명성을 빼앗긴지 오래됐다.그나마 부산이 해양도시라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여름 해운대 백사장에 수백만 명의 피서객이 몰렸다는 뉴스를 볼 때뿐이다. 해운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가 뉴스의 초점이지, 부산에 컨테이너선박의 입∙출입, 수출실적, 항만의 혼잡 등에 관한 소식은 언론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다.지역개발사업의 대표격인 해운대 초고층 빌딩의 건설로 부산경제가 얼마나 혜택을 받는지 헤아리기 쉽지 않지만 시민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인프라는 아니라고 판단된다.부산시가 첨단지식산업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여전히 의식수준은 2차 산업혁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성이 없다는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은 것은 보면 1차 산업혁명 고개도 넘어서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오거돈도 30년 아성의 보수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은 좋았지만 경제를 살릴 방안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부산시 경제도 자갈치 시장에서 회나 팔고, 여름철 해운대 백사장에서 파라솔 장사나 하는 어촌의 수준을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시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등의 성공요인을 제대로 파악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경제는 구호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발전목표를 설정해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일관된 방향으로 죽도록 매진할 때 살릴 수 있다. 부산경제의 문제점은 해양도시의 장점을 스스로 포기한 인천시와 마찬가지로 해양물류 거점의 역할을 재정립하지 못한 것에서 출발한다.오거돈의 부산 경제정책도 무능했던 보수 정권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를 파탄 낼 신공항 건설 추진부터 중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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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명확한 정치적 신념보다는 보수의 아성이라는 그릇된 자부심이 변화를 막아, 어설픈 첨단지식산업보다 선박수리와 기계와 같은 전통적인 멋거리에 눈 돌려야 경제 회생 가능▶시청에 걸린 현수막에서 남은 3년의 가시밭길이 보여종합평가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지방자치행정을 평가하기 위해 개발한 ‘5G Valley Model’을 적용해 부산시의 자치행정을 평가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 오곡밸리모델로 평가한 부산시 자치행정부산시 자치행정은 10점 만점에 평균 2점 수준으로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 5개 영역이 모두 10점 만점에 2점으로 평가를 받았다.부산시의 자치행정도 인천시와 마찬가지로 개선되기보다는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평가한 세부 내역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정치는 정치인, 공무원, 주민 모두 명확한 정치적 신념보다는 보수의 아성이라는 그릇된 자부심으로 뭉쳐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출신인 오거돈이 시장으로 당선됐지만 보수와 정치적 색깔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모호한 정책이 대부분이다.PK의 거점도시로 김영삼, 노무현 등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정치인을 배출했지만 여전히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대구, 경북, 경남, 울산 등과 첨예하게 이권이 대립하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을 반복해 추진하고 있는 것도 부산 정치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도심 재개발도 이권의 배분과 청탁의 먹잇감에 불과했다.둘째, 경제는 한때 한국의 경제수도로 지칭 받을 정도로 확고한 지위를 유지했지만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던 섬유, 신발, 선박수리 등에 관련된 기업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고, 동북아 물류거점도 중국의 푸둥항이 부상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자갈치시장이나 국제시장과 같은 관광상품, 해운대 피서지 등으로 400만에 가까운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거돈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첨단지식산업도 스마트 팩토리보다는 지역기반이 탄탄한 신발과 선박수리업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폼이 나고 깨끗한 업종만 고집하면 경제를 살릴 수 없다.셋째, 사회는 인구는 400만명에 근접했다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를 유인할 수 있는 경제적 요인이 부실한 것도 부산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선박제조와 원양어업 등의 기초산업이 부실하면서 이권이 생기는 개발사업에 주력한 것도 공무원 부패가 만연해진 이유다. 이권을 서로 나눠먹었지만 1명이 총대를 메고 책임을 지는 것이 멋있는 사람인양 영웅시하면서 건전한 사회발전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부산이 재도약을 꿈꾸기 어려운 이유다.넷째, 문화는 2000년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문화재나 지역을 대표할 스토리가 전혀 없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문화행사가 있지만 여전히 국내 영화인의 축제에 불과해 국제적인 영화제로 부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갈치시장의 회, 대변항 멸치회, 동래 산성막걸리와 파전, 돼지국밥이 대표적인 음식이지만 대규모 관광객을 유인하기에는 부족하다.항구도시를 포기한 인천이 인천대교를 대표적인 명물로 내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산도 새롭게 건축한 광안대교가 지역의 대표 관광상품이다. 광안대교는 여름철 부산을 먹여 살리는 천혜의 관광지인 해운대 해수욕장의 전면 풍광을 막고 있어 흉물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다섯째, 기술은 신발과 선박제조 등 대표 산업이 부진하면서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르노자동차도 프랑스와 일본에서 디자인된 차량의 조립하는 수준에 불과해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조선소를 필리핀 수빅만으로 이전했던 한진중공업도 재정적 어려움으로 오너가 퇴출된 상황이다.해외로 나갔던 신발제조업체의 일부가 되돌아오면서 첨단신발산업기지로 환생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첨단지식산업도 ICT와 바이오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선박수리, 기계 등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성은 높다.결론적으로 한때 한국의 경제수도로 자리매김했던 부산시의 지방행정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오곡밸리모델’로 평가하면 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의 영역에서 낙제점으로 평가를 받았다.아시아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북아메리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천혜의 항구를 가진 부산이 중국의 부상과 산업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3류 도시로 전락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필자의 지인들은 경제가 어려워 먹고 살 거리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시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각종 시민단체가 내건 현수막이었다.진보정부가 출발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이권싸움이 격화되고 행정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은 3년 동안 민선 시장의 앞날에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져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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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이하 두산)은 재계 서열 10위권 기업으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두산의 창업자는 박두병 회장이지만, 그의 아버지 박승직이 운영하던 ‘박승직상점’까지 포함할 경우 약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한때 ‘물장수’기업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사업을 했지만 현재는 중공업, 기계 등 인프라관련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두산은 설립초기부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고, 창업자의 자식들도 형제간 경영권 승계를 원칙으로 삼았다.현재 다른 그룹과는 달리 50대의 젊은이(?)인 박용만 회장이 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있어 새로운 혁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 식산재산 불하로 대기업의 기틀 마련 두산의 창업자인 박두병은 보부상으로 장사를 시작한 아버지 박승직과 달리 정규교육과정을 거쳤다. 박두병 회장이 은행원으로도 근무를 했지만 아버지 장사에 동참하면서 근대적 형태의 기업경영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는다.두산이라는 이름은 창업자인 박두병 회장의 ‘두’자에 뫼 ‘산’자를 합쳐 두산이라는 사명을 짓게 됐다. 박두병 회장의 아버지인 박승직이 사업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한 말(斗),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山)같이 커져라’고 작명했다.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재산을 일군 사업가, 출세를 한 관료, 정치인, 언론인, 예술인 등에게 항상 따라 붙는 것이 ‘친일행적’이다. 일본이 한반도에 산업화라는 ‘선물’을 줬다고 주장하는 일부 전문가도 있지만 약탈과 폭압의 식민지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무리가 따른다.특히 일본이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조선을 병참기지화, 군수물자보급창고 등으로 여기면서 약탈은 거세진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 변절자가 수도 없이 나왔다. 일본이 ‘내선일체’라는 구호를 떠들면서 광기 어린 전쟁놀음에 조선인을 동원하면서 변절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두산은 일본 소화기린맥주의 지분을 투자해 국내 판매권을 보유해 맥주사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 최대규모로 일제가 만주, 중국 주둔군의 전쟁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다.두산의 박두병 회장이 소화기린맥주의 지분에 참여한 것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맥주판매업으로 많은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패망한 후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사업을 주도했다.소화기린맥주를 동양맥주로 상호를 변경했고, ‘OB’라는 상표를 만들었다. 이후 1952년 정부로부터 동양맥주를 불하 받았다.한국의 대기업 중 대부분이 일본 식민지 유물인 식산재산을 불하 받아 성장했다. 두산도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은 박승직 상점이 아니라 동양맥주였다. 일제의 식산재산의 불하는 정치적 특혜에 가까웠다.SK그룹도 선경직물을 불하 받아 섬유관련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화그룹도 한국화약이라는 식산재산을 불하 받아 화약전문기업으로 출발해 현재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쌍용그룹, 애경그룹 등도 식산재산을 불하 받아 대기업이 됐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복잡했고,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식산재산을 불하할 수 밖에 없었지만 국가자산을 헐 값에 처분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당시의 가치를 잘 평가해서 불하했다고 하지만 각종 특혜를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식산의 불하로 받은 돈의 사용처도 문제가 있다. 정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쌈짓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쌈짓돈처럼 사용됐다.일제가 수탈을 통해 만든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을 처분한 돈은 식민지 시대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보상하는 데 사용됐어야 했다. 하지만 희생당한 일반 국민이 아니라 눈치가 빠른 기업이나 정치인들의 배만 불렸다.일제 식민지 역사청산에 대한 요구는 많지만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시대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거나 식민지 시대에 배운 지식과 경험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하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모두가 상황논리이고, 결과를 갖고 과정과 동기를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독일은 2차 대전에서 희생당한 유태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지만 일본은 지나간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는데 급급하다.일본이 남기고 간 재산을 통해 배를 불린 사람들은 일본을 비판하기를 주저한다. 후손들이 역사의 평가에 인색하면 억울한 역사가 반복된다. ◇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의 원칙을 지키는 중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인건비가 들지 않는 가족들을 동원해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족들은 신뢰가 있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동업보다 유리하다.두산의 박두병 회장도 형제들과 사업을 했고, 자식들도 ‘인화’를 강조하면서 기업을 공동소유, 공동경영하고 있다. 그룹의 회장직도 형제간에 나이 순으로 승계를 해 가족경영의 모범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박용오 전 회장의 폭탄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해당되는 평가다.2005년 박용오 전 회장의 내부고발은 그룹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다른 그룹들이 창업자의 사망과 유산분쟁으로 원수가 되는 것과 달리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하던 기업이라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한진그룹도 창업자의 사망 이후 재산분쟁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고,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도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소재 논란으로 갈등을 겪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 분리작업이 진행 중이다.박용오 회장이 내부고발을 하게 된 이유는 그룹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것과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재산분할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용오 회장은 형이 그룹 회장직을 동생인 박용성 회장에게 물려주라는 가족회의 결정에 반발했다고 한다.박용오 회장은 물장사 위주의 사업을 중공업으로 성공적인 전환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다. 박용성 회장은 한때 ‘미스터 쓴소리’라는 닉네임을 얻었을 정도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박용성 회장도 형의 내부고발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재기가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의 공동소유에 대한 개념은 매우 좋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그룹들이 창업자의 사망 이후 자식들이 분할해 경영하면서 망한 사례가 많다.한진그룹도 한진중공업이 분리되고, 한진해운 마저 분리하려고 하면서 종합물류기업이라는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삼성그룹도 이병철 회장의 사망 이후 CJ그룹, 신세계, 한솔그룹, 새한그룹 등으로 분할됐다.새한그룹은 IMF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졌고, 한솔그룹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도 유통업을 전문으로 하지만 경영성과가 좋지는 않다. 현대그룹도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 현대그룹,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 등으로 나눠졌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잘 나가고 있지만 다른 그룹들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구씨와 허씨의 아름다운 동업관계로 칭송을 받던 LG그룹도 GS그룹, LS그룹, LIG그룹 등으로 분할됐다.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LG그룹의 분할은 외부적으로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아 시작이 좋았던 기업이라 끝도 좋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LG가 현재까지 국내 대기업 중에서 재산권분쟁이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그룹이지 않을까 생각된다.두산의 경우 지분이 복잡하고 자식들이 많아 분할을 할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다만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고 인원 수가 많지 않으면 문제가 없지만 형제간의 우애가 사라지거나 인원 수가 많아지면 합의가 매우 어렵다. 두산도 서로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적정하게 이익을 나눠가질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자식들인 2세는 기업의 성장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나이 많은 형이 기업발전에 더 기여했다고 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형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를 수 밖에 없다.두산은 형제의 난이 발생한 후 2세 경영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현재 2세인 박용만 회장이 경영을 하고 있지만 3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2세들과는 달리 3세들은 입장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두산도 형제들이 많아 3세는 더 많아졌다. 조용하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는 3세들도 있지만, 자신의 뜻대로 사업을 펼쳐보고 싶은 자식들도 있을 수 있다. 형제간에는 큰 형의 결정이나 가족회의의 권위가 잘 먹히지만 3세로 넘어오면 다르다고 봐야 한다.나이가 많다고 경영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했다고 기업을 잘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능력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기업실적 기여도도 다르다.후계자들의 경영능력이 과대 포장된 경우도 많고, 능력도 규모의 경제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뛰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용오 회장의 경우에도 두산에서 나온 후 건설회사를 시작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박용오 회장의 아들도 코스닥 기업을 인수하고 나름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두산의 3세들도 활발하게 일선에서 뛰고 있지만 경영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아무리 아버지 세대의 우애가 좋더라도 사촌이 되고, 6촌이 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두산도 3세들의 경영능력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공동경영의 필요성은 크지만 2세 때처럼 가족회의가 권위를 가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공동소유, 공동경영은 말은 좋지만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미 2005년 내부고발사건으로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 그룹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높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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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의 기업문화를 정리하면서 새삼 한국식 경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창업자가 아들, 특히 장자에게 핵심 기업을 물려주고, 창업자의 자녀들이 기여도에 따라 기업을 나눠가지는 것이 과연 승계자나 주주에게 유리할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경영권을 무조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식 혹은 주주에게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진의 후계자가 경영능력이 떨어져서 이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른 대기업도 한진과 비슷한 처지다.수천 년 동안 검증된 ‘부자 3대 없다’는 격언이 21세기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이 신기하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풍요롭게 된다고 해도 인간의 욕망과 세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 2세들의 법정다툼, 3세의 튀는 행동도 부정적그룹을 일군 창업자의 자식들이 모두 타고나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자식은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 받았고, 어떤 자식은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먼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장남이 가업을 이어 받는 동양식 전통도 한번쯤 고민이 필요하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장남인 이맹희 대신에 3남인 이건희에게 기업을 물려줘 장자세습의 전통을 깼지만 형제간의 불화를 막지는 못했다.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도 장남인 정몽구 대신에 5남인 정몽헌을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후계자가 된 이후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한진은 창업자의 자식들이 회사를 분할해 승계 받았다. 장남이 그룹의 간판기업들을 물려 받았고, 다른 형제들은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등을 나눠 가졌다. 한진해운은 며느리가 물려 받아 독립경영을 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계열분리는 이뤄지지 않았다.조양호 회장이 그룹 분리에 부정적이라고 하지만 최은영 회장 측은 의지가 확고하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은 주력 사업을 필리핀 수빅만으로 옮긴 후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권의 중재로 한진중공업의 노사대립이 타결됐지만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현재 상황이라면 한진중공업이 정상화돼 과거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한진의 형제들은 창업자의 재산, 유언장 등을 두고 형제간에 10여 년 동안 법정다툼을 벌였다. 형제간의 기나긴 법정다툼으로 체면을 구겼고, 소송은 끝났지만 형제간의 불편한 관계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그룹을 분할해 물려받았지만 모두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경영능력이 출중하다고 판단한 자식에게 그룹을 물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자식들은 지주회사의 지분만 갖고 배당을 받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유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조건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을 해야 인생의 폼이 나는 것은 아니다고 본다. 창업자의 장남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도 튀는 행동으로 이슈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3세가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경영능력은 평가하기 어려운데, 경영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돌출행동은 부정적인 평가를 유도한다. 차세대 오너로 꼽히는 3세가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면서 실력부족을 드러내거나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면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 한진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대기업의 후계자에 해당되는 말이다. 일부 국내 대기업의 역사가 50여 년을 넘어 서면서 아직 국내 대기업 중 어디도 후계자로 지목된 2세, 3세가 확실한 경영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룹을 물려 받은 2세나, 3세가 정상적인 경영에 실패해 그룹을 망하게 한 사례가 많다.2세의 경우는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창업자의 가신들이 조력을 잘 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위기를 초래하지 않지만, 3세의 경우에는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가신들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조직을 떠났기 때문에 위기진단이나 대처능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제 오너의 자식이라는 신분뿐만 아니라 경영능력도 보여 줘야 주주, 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룹차원에서 인위적인 성공체험은 후계자 본인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후계자 자신도 주위의 아부성 발언을 경계해야 한다. 후계자가 치열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친 창업자보다 학교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도 풍부하겠지만 기업경영의 성공이 학교성적이나 지식의 양에 절대적으로 의존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자녀들은 조용하게 자신의 그릇에 맞는 인생을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물류기업이지만 정작 후계자 중 현장 전문가는 없다나이가 들어 가면서 인생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기업문화를 연구하고, 주요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분석하면서도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일본에는 많은 100년 기업이 왜 한국에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 왜 부자 3대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일부 연구소나 전문가들이 100년 기업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타당한가? 삼성이 그토록 닮고 싶다는 스웨덴의 발렌베리가문의 진정한 노하우는 무엇일까?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선대가 쌓은 재산과 명예를 후대에 넘겨주고 싶어 한다. 당연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한국과 일본의 장사(사업)에 대한 관념을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 한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상인을 천시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은 사회적 윤리를 지키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차이가 있다.장사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한국은 장사를 하면 주인이 카운터를 보면서 돈을 관리한다. 일본의 주인은 카운터가 아니라 현장 일을 한다. 음식점을 경영할 경우 일본의 주인은 주방에서 음식을 직접 한다. 조리법은 대대로 전수돼 몇 백 년 동안 이어진다. 한국의 음식점 주인들은 주방업무는 사람을 고용하고, 자신은 카운터에서 편하게 계산만 한다. 종업원이 혹시 돈을 훔칠까 봐 가장 중요한 돈을 챙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점의 핵심경쟁력은 카운터에서 돈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서 나온다.망하지 않고 수십 년을 이어오고 있는 음식점의 경우 자손들은 모두 음식 조리법부터 배우고, 주인이 직접 양념준비나 대표 음식의 조리를 책임진다. 주인이 주방이 아니라 카운터에 앉아 있는 음식점은 3년을 넘기기도 어렵다. 직장 퇴직자들이 요식업 창업을 쉽게 생각하고 달려 들지만 대부분이 3년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 음식조리를 할 줄 아는 주인의 음식점만 살아 남는다. 음식점의 경영에 대해 설명한 것은 기업경영도 규모만 다르지 본질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음식점의 핵심이 주방이라면, 기업의 핵심은 관리가 아니라 제조나 서비스 현장이다.창업자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기업을 키웠지만, 후계자들은 창업자가 번 돈으로 편하게 공부하고, 현장이 아니라 관리업무부터 배운다. 경영학을 잘 모르는 창업자가 회계, 재무와 같은 관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자식에게 어려운 현장 일을 시키고 싶지 않는 것이다. 현장을 모르는 후계자가 관리만으로 기업을 유지/발전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진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조중훈 회장의 자식이나 손자 중에서 물류업의 일선에 서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즉 다시 말하면 한진이 해운, 항공물류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면 선박을 운행하는 항해사, 항공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혹은 정비사를 해야 한다.옆에서 본 이론만 가지고 전문가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중훈 회장도 장남인 조양호 회장에게 대한항공을 맡기려고 했다면 아들을 항공기 조종사나 정비사로 만들었어야 했다. 다른 아들들도 마찬가지다. 마케팅이나 기획부문 경험만으로 대한항공을 경영하는 것은 어렵다.경영자가 호통이나 치고, 무조건 밀어 부쳐 성과를 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진의 조양호 회장도 현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지 못해 한진의 핵심경쟁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자신의 자식들이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럽더라도 힘들고 어려운 현장업무부터 시켰어야 했었다. IT서비스, 마케팅, 기획과 같은 업무를 경험하고 인위적인 성공체험을 쌓아 주는 것만으로 경영권을 승계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조양호 회장의 자식들이 아직 어리니 본질의 교육을 하는데 늦지는 않았다고 본다. 3세의 트위터 논란, IT서비스업체 일감몰아주기, 대한항공 기내폭행 사건일지 유출, 사건일지 유출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후계자로 지목된 3세들이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처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사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항공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류업의 미래방향이 어떤 것인지, 기업문화의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 고민거리가 산재해 있다. 한진의 사업이 전반적으로 정체돼 있고, 본원적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가 본질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돼 아쉬움이 남는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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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이하 한진)은 창업자 조중훈 회장이 1945년 설립된 한진상사가 모태로 항공운송업, 해운운송업, 육상운송업, 택배사업, 정보통신업, 호텔사업, 기내판매업, 관광업, 기내식사업, 항공우주사업, 리무진사업, 지상조업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국내외에 약 100여 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Global Logistics를 선도하는 종합물류전문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진은 1970년대 삼성, LG에 이어 재계서열 3위까지 진입했지만 창업자 아들들이 금융, 중공업, 해운, 항공 등으로 그룹을 분할하면서 그룹위상이 많이 위축됐다. ◇ 수송보국을 기치로 대기업으로 성장한진은 1945년 설립된 한진상사가 모태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1956년 미군 물자운송을 시작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의 창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실과 신용이 사업의 무기였다.난관이 있었지만 신용을 바탕으로 한 미군 물자운송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1966년 베트남 물자수송을 하면서 규모를 확장했다. 베트남 사업을 계기로 한진은 작은 운송업체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1960년대 말부터 베트남에서 번 돈으로 국내 사업을 다각화했다. 미군 버스를 불하받아 버스운송사업에 진출했고, 포스코 건설을 계기로 항만하역운수업에도 진출했다. 적자투성이던 대한항공을 인수해 항공운수업도 진출했다.1970년대는 해운운송업에도 관심을 가져 1974년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물류업 자체가 비용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원가절감으로 견뎌내면서 중동특수를 누릴 수 있었다. 막대한 건설물량이 쏟아지고, 인력의 투입이 활발해지면서 물류업도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었다.1989년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개칭했다. 대한조선공사의 건설부문은 한진건설이 됐다. 2007년에는 저가항공사인 진에어도 설립해 저가항공시장에 진입했다.조중훈 회장은 ‘수송’이 인체의 혈관처럼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수송사업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다른 대기업이 백화점식 문어발확장을 할 때도 그는 운수업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에 집중했다. 인수한 대한항공을 정상화하자 항공기 지상조업, 정비, 기내식, 호텔 등 부대사업까지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었다. 조중훈 회장의 말년인 2000년 4남인 조정호가 메리츠증권을 가지고 분가했다. 금융관련 계열사를 중심으로 분리한 후 금융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2남인 조남호는 2005년 한진중공업을 계열분리해 나갔고, 한진해운은 계열분리는 되지 않았지만 3남의 부인인 최은영이 회장이다. 분리한 그룹 중 메리츠그룹은 무난하게 경영되고 있지만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 근로자 분신과 농성으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고, 한진해운은 실적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진도 대한항공을 제외하곤 실적이 좋지 못하다. 한진의 간판기업인 대한항공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택배사업, 물류사업 등 어느 곳 하나 확고한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수송 외길을 걷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지만 외부환경이 녹녹하지 않다.창업자 조중훈 회장이 ‘길 없는 곳에 길을 닦는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기업을 물려 받은 자식들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 재산싸움으로 형제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국내 재벌기업 중 재산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 단순히 감정싸움으로 그치기도 하고, 민사소송으로 번지기도 한다.국내 최대재벌기업인 삼성그룹도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을 두고 이맹희, 이건희 등 형제자매가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진과 같이 물류전문그룹인 금호아시아나그룹도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두고 형제간에 불화가 발생해 그룹분리작업을 진행 중이다. 유난히 형제애를 강조하고 그룹을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그룹 회장을 하던 두산그룹의 경우에는 재산싸움이 내부고발로 번져 전∙현직 회장이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한진도 창업주의 사망 이후 유언장의 진위여부 등을 갖고 형제들이 지루한 소송전을 벌였다. 장남과 3남이 한편이고, 2남과 4남이 다른 편으로 갈라섰다.2005년에는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정석기업의 차명주식 증여 소송을 벌였다. 조중훈 회장의 유언장에 없던 현금 1000억 원과 정석기업 주식 7만 주가 발견되면서 소유권 갈등이 발생했다.2006년에는 대한항공 면세품 납품업체을 브릭트레이딩에서 삼희무역으로 변경하면서 문제가 됐다. 2남과 3남이 장남 조양호 회장이 브릭트레이딩을 폐업하면서 배당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2008년에는 창업주의 사가인 부암장을 기념관으로 건립하는 이슈를 두고 소송전을 벌였다. 2002년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부암장에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합의했지만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이를 지키기 않는다고 2남과 3남이 손해배상과 지분이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2009년에는 대한항공과 한진중공업의 토지매매에 관련된 소송전이 발생했다. 1995년 대한항공이 한진중공업으로부터 매입한 토지의 거래가 무효라는 것이었다. 부암장 소송과 토지매입 소송이 조정으로 마무리됐지만 양측은 모두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2012년에는 창업주 사망 10주기 행사를 형제들이 별도로 개최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법적 분쟁을 겪는 동안에도 형제들이 창업주의 제사를 따로 지냈다는 설도 있다. 재산싸움으로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최근 삼성그룹도 재산분쟁을 하면서 이건희 회장 측이 장남인 이맹희와 종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이병철 회장의 기일에 묘소를 참배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논란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도 중요하지만 인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동양적인 관점에서 그룹을 운영하는 기업주는 임직원에게 부모와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이 직원들의 모범이 되지 못하면 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 직원들에게 무슨 낯으로 기업문화의 핵심인‘화합’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한국이 천박한 자본주의를 잘못 받아들이면서 사람의 도리보다는 돈의 위력이 우선시되고 있다. 기업도 사회도 국가도 사람의 도리가 우선되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한진이 수송보국의 일념으로 물류전문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하지만 성장이 정체된 것도 건전한 조직문화가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리더십이 전수되지 못했다한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오랫동안 한진에 근무했던 직원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창업자 조중훈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좋게 평가했다. 의사결정을 늦추지 않고,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했다는 것이다.실무자들이 문서를 기안해 올라가면 대체적으로 3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첫째,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둘째,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뭐가 문제인가? 셋째, 얼마가 투자돼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쾌하면 아무 소리 없이 사인을 하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경영자들이 대기업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특이한 리더십, 신념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이 ‘해 봤어’라는 말을 하면서 무조건적 도전을 강조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주영 회장의 한마디보다는 조중훈 회장의 세 마디가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다.한진의 직원들을 보면 매우 섬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창업자의 업무스타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직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기안한 문서에 대한 3가지 질문을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한진이 창업자 사후 이렇다 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창업자의 신념과 리더십이 자식들에게 전수되지 않았지 않나 의심을 받고 있다. 장남이 조양호 회장도 물류전문기업을 지향하지만 사업혁신을 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경영일선에 투입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대한항공 기내 폭행사건을 대처하는 것도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건관련 내부보고서가 외부로 유출되고, 장녀인 조현아 부사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해당 고객의 인권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지적을 받는다.고객의 행동도 문제였지만, 이에 대처한 승무원의 대응도 미숙하지 않았냐는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고객은 재직하던 기업에서 사직을 하고 언론과 접촉을 끊은 상태이지만 대한항공이 이슈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은 기업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진이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한다면 ‘고객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긴 창업자의 신념과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고객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서비스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물류산업에서만큼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정도로 혁신을 거듭했지만, 소위 말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이점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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